모기지 랜더 NBGI 정재웅 대표 '융자 파동 우린 몰라요'
[CEO를 찾아서] 모기지 랜더 NBGI 정재웅 대표 '융자 파동 우린 몰라요'
원칙고수···10년새 50배 '30억불 대출', 은행·부동산 개발업 진출 '제 2 도약' 꿈
요즘 융자업계는 시쳇말로 '죽을 맛'이다. 지난해 융자사기 문제로 FBI가 대대적인 조사를 벌여 한바탕 홍역을 앓았다 겨우 진정되나 싶더니 최근에는 서브프라임 융자 부실 파문으로 또다시 대형 태풍에 휩싸였다.
특히 모기지 렌더들의 어려움은 더하다. 전국 2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렌더인 뉴센추리가 파산보호 신청에 들어가는 등 이미 5~6개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렌더가 파산했다. 전국 최대의 모기지 렌더인 컨트리와이드도 이미 수천명에 이르는 직원을 줄였으며 2위의 렌더인 워싱턴뮤추얼도 역시 대대적인 융자부문 감축에 들어갔다.
이같은 상황에도 한인 모기지 렌더인 NBGI(National Bankers Group Inc..대표 정재웅)는 오히려 개발업 진출을 가속화하는 등 성장을 계속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NBGI는 지난해 대출 규모 30억달러로 한인 최대의 모기지 렌더다. 이미 주류사회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의 렌더로 인정받고 있다.
NBGI가 창립된 것은 지난 97년. 당시만 해도 대출규모가 6000만달러 정도에 불과했으니 10년만에 대출규모로 50배나 수직상승한 셈이다. 대출 건수도 97년 당시에는 연 400건이 채 안됐으나 지난해에는 7000건에 이른다.
NBGI가 이처럼 급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유례없는 부동산 붐이라는 호기와 과감한 상품 개발 철저한 리스크 관리 때문.
부동산 환경이 급변하면서 지난 수년동안 새로운 융자 상품이 홍수처럼 쏟아져나왔다. 정 대표는 이 모든 상품을 철저히 분석하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상품은 과감히 도입했다. 이에 따라 대형 렌더에 못지 않은 다양한 융자 상품을 운용하고 있어 모기지 브로커들의 만족도도 높다.
또한 이자율도 최소화하는 등 고객 위주의 전략을 펼친 게 모기지 브로커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이같은 급격한 성장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NBGI에는 급성장에 흔히 따르는 부작용이 거의 없다. 실제로 대부분 렌더들의 융자 부실이 점차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NBGI가 지난 2년동안 대출한 모기지1만4000여건중 차압으로 이러진 경우는 단 7차례에 불과하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서브프라임 융자는 단 한건의 차압도 없다.
정 대표는 “기준을 스스로가 얼마나 잘 지키느냐가 회사를 건실하게 유지하느냐의 관건이라고 생각한다”며 “당장의 매출 확대를 위해 기준을 무너뜨리는 유혹을 뿌리친 게 결국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같은 자신감 때문인지 대부분의 렌더들이 서브프라임 융자나 노다운 융자를 사실상 중지하거나 줄이고 있지만 NBGI는 지난해와 똑같이 운용하고 있다. 기준만 충실히 지키면 전혀 문제가 없다는 정 대표의 소신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융자를 제공하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주택을 장만할 기회를 잃게 됩니다. 렌더는 보다 많은 사람들의 주택 장만을 도와줘야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정 대표는 요즘 새로운 비상을 꿈꾸고 있다. 39세의 젊은 나이라는 또하나의 자산을 바탕으로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개발업자가 되고 싶다는 욕심과 2~3년내 은행을 차리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다.
“단순히 규모 측면이 아닌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건물들을 지어서 한인사회를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욕심이 있죠. 그래서 현재 개발중인 3개의 콘도는 수익 보다는 질을 우선순위로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남가주로, 미 전국으로 개발을 확대하는 게 새로운 인생 목표입니다.”
■ 정 대표는…
정재웅 대표는 중 1학년때 가족과 함께 이민와서 USC에 입학했다. 그러나 졸업을 1학기 앞두고 융자 에이전트를 시작, 94년 융자 브로커 회사인 파이낸스 플러스를 차린 후, 97년 NBGI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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